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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동김씨대종회 차원부(車原頫) 설원기 - 2004-02-2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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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차동박 댓글 0건 조회 65회 작성일24-10-02 21:45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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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솔내영환
작성일2006-02-21 (화) 12:16
분 류일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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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려실기술 제3권

세종조 고사본말(世宗祖故事本末)

 

차원부(車原頫)의 설원

 

차원부는 고려말에 평산(平山) 수운암동(水雲巖洞)에 은거했는데, 하륜(河崙)이 사사감정으로 모함하여 정도전(鄭道傳)ㆍ함부림(咸傅霖)ㆍ조영규(趙英珪)와 더불어 그를 때려 죽였다. 《대동운옥(大東韻玉)》
○ 황보인(皇甫仁)이 항상 차원부가 애매하고 원통하게 죽었음을 생각하여 경연에서 아뢰어 특명으로 원통함을 풀게 되었다. 《설원록(雪冤錄)》
○ 성삼문(成三問)이 차원부의 설원에 대하여 왕명으로 지은 시 두 수가 있으니, 첫째 수에 이르기를,
“언덕[原] 위에 바람 불어 집 기목[杞]이 기우니,
반암(半巖)에 뉘가 있어 옛 쌍청(雙淸)을 보호하랴.
몇 구비 흘러가는 삼탄수(三灘水)는
오늘도 한결같이 네 얼자(四孼子)를 꾸짖는 구나.
하였는데, 그 자주(自注)에 이르기를, “원(原)은 송원(松原)과 마원(麻原) 두 고개로서 우봉(牛峯)과 개성 경계에 있는데 차원부가 공명(功名)을 생각하지 않고 하륜(河崙)의 악함을 알고서 평산으로 피신해 간 때를 말한다. 기(杞)는 원부를 가리키는 것이니, 태종이 나중에 원부를 잘못 죽였음을 알고서 노하여 하륜을 꾸짖기를, ‘나의 기(杞)와 재(梓)가 이제 무너졌구나.’ 하였다. 반암(半巖)은 원부의 시 ‘반산풍월자매화(半山風月自梅花)’의 뜻을 말한 것이니, 원부의 살고 있던 평산 수운암동을 말한다. 원부가 일찍이 이곳에 살면서 바위 위에는 몇 그루 매화를 심고 못 가에는 천 떨기 국화를 심었으므로 그 ‘자매화(自梅花)’의 뜻을 취해서 빈 골짜기에 사람이 가고 없음을 길이 탄식한 것이다. 삼탄수(三灘水)는 수운동(水雲洞)의 동북쪽에 있으며, 사얼(四孼)은 조영규ㆍ정도전ㆍ하륜ㆍ함부림을 말한다.” 라고 하였다.
둘째 수에는,
“춘산(春山)향해 눈물 뿌리며 접동새에 묻노니
고운 님 어이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고.
어젯밤 용루(龍樓)에서 춤을 추던 그 나비
운암동 바둑판에 노닐 줄을 알았으랴.
하였는데, 그 자주(自注)에 이르기를, “용루에서 춤을 추던 그 나비는 태조가 원부를 꿈 가운데서 본 뜻이다. 원부는 본래 처사(處士)여서 공명을 생각하지 않고 산골짜기에 집을 짓고, 셋째 형, 넷째 형과 함께 스스로 천진한 마음을 수양하고 있었었다. 태조가 세자 문제를 의논하려 하였으나 서로 마음을 논할 이가 없어 할 때에, 원부가 별안간 꿈에 나타났다. 이에 전일 위화도에서 회군할 것을 의논할 때, 하룻 동안에 다섯 번이나 칙명을 내려 차원부가 한 달 사흘 만에 도착하였는데, 결국 가문의 서자(정도전과 하륜을 가리킨다.)가 적자(嫡子)를 시기한 화를 만나 네 형과 함께 일시에 죽임을 당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.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누가 감히 변론하여 사실을 따질 수 있었겠는가. 이제 설원(雪冤)을 하였으니, 어찌 시운(時運)의 성쇠에 관계된 것이 아니겠는가. 이는 오로지 임금이 선왕(先王 태조)께서 남기신 뜻을 밝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.” 하였다. 《해동잡록(海東雜錄)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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